"회피형 인간".
이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이 단어는 나를 보고 만든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겉에서 나를 바라볼 때에는, '뭐야 잘 지내잖아?', '사교적으로 보이는데?' 라고 할 수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회사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하며 MBTI 이야기가 나올 때면 가끔씩 'E 같다' 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에게 인간관계는 너무 어렵다. '저 사람이 이 말을 무슨 의미로 받아들일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내 말을 집어삼키고 모든 상호작용을 방어적으로 만든다.
직장동료 같은 '필요에 의한 관계' 는 기본적으로 이런 방어적인 상호작용을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주변에서는 '사교적이다', '외향형 같다' 라는 소리를 듣곤 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의 진짜 문제는 친구 관계이다.
물론 친구가 없진 않다.
하지만 이런 방어적인 상호작용은 깊은 친구 관계를 맺는 것을 막아선다.
당장 말을 섞을 수 있는 친구는 많다. 하지만 진짜 고민과 감정을 나누고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는?
...지금 생각해 보니 하나도 없다.
주변에서 볼 때는 외로워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너무 외롭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숨겨야 한다. 감정을 드러내면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른다.
많이 대화해 보지 않았거나 불편한 사람에게 인스타그램 DM이 오면 알림으로 슬쩍 읽고 고민한 후 못 읽은 척 답장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예사이다.
때로는 몇 시간이 넘도록 답장하지 않고 마음 속으로 곱씹은 후 답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꼭 대화를 피하는 건 아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짧은 영어로 서양인과 대화를 시도하고,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에게 괜히 말 걸어 보고..
이 상황의 공통점은 뭘까?
나는 '지속되는 불편한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 대화' 를 피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남의 마음을 너무 의식해서 나 자신도 집어삼켜 버리는 자아를 가지게 된 거다.
이게 나고, 나는 20년을 이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난 이게 너무 싫다. 나도 깊은 친구 관계를 원한다. 하지만 바꾸는 게 너무나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회사에서 '괜찮은 사람' 연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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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회피형 인간인가? 2025.10.14
나는 회피형 인간인가?
2025. 10. 14. 20:09